조치원이 무연탄 화물 도착역이라 한 것은 중학교 2학년쯤
석탄은 검은 가루인 채 수도 없이 실려 오는데 강원도에서 퍼 왔다 했고
얼마 후에 권모라는 사람이 강원도에서 와 강원연탄이라 역 끄트머리 철길 옆 바싹대어 공장을 지었다.
수군대던 남리 사람들은 일감을 찾아 공장을 들락거렸고 엉성하지만 제법 큰 덩치로 선 공장은 기계를 돌리고 구공탄을 찍어대더니 곧 공장 전체가 까매져버렸다.
철 길 옆에 붙어있는 낮은 집들
증기기관차의 거친 함성에 구들장까지 흔들려 새벽이 올 때까지 파도가 치고
해가 뜨면 연탄 찍는 소리가 얇은 창문을 흔들기 전에 사람들은 검은 가루가 스며든 옷을 입고 분주히 집을 나서면 바람 소리 빈집에서 하루 종일 연탄을 찍었다.
겨울이면 얼굴이며 콧구멍까지 까만 노동자들이 석탄산이 허물어지도록 밤에도 개량된 십구공탄을 찍어 수십만 장의 연탄이 고개 너머 인근 도시로 실려 나가는 모습이 휘황한 불빛 아래 장관이었지만
그녀의 동네는 연탄이 없었다.
어느 초겨울 연탄 오백 장을 광에 들인 그녀의 엄마는 동네 아낙들의 부러움을 사며 거들먹거렸지만
사람들이 없는 데서는 한 방에 식구들을 몰아넣고 불구멍을 막고 남은 연탄을 세며
봄까지 연탄을 남기려 애썼다.
광 구석 쪽 밑에 깔려 부서진 연탄을 보면
마르지도 않은 연탄을 판 김씨네는 양심이 없다 하며
조각을 모아 요령껏 반죽을 해 난로에 넣었다.
집도 빨래도 새까만 동네에
증기기관차가 토해낸 석탄재에 미처 다 타지 못한 것이 섞여 있어
바닷가 바위에 붙은 굴을 캐듯 사람들은 골탄을 귀하게 주워 담았다.
골탄 덩어리는 미지근한 방바닥이 되기도 하고 조치원 장에 팔아 꽁치 한 마리가 되어 밥상에 오르기도 했으니 역 한편 쓰레기장은 조개 캐는 해변같이 주먹만한 온기를 주는 곳.
먼 육교를 두고 아랫말 침산리 사람들은 연탄공장 옆 개구멍을 통해 철길을 건너가곤 했는데 학교가 끝나고 가방을 든 채 육교위에 서서 철길을 내려 보면 어디론가 가고 싶었다. 그녀는 가고 싶었다.
기차가 달리는 해변가처럼 철 길 한쪽에는 벚꽃이 흔들렸고
기관차의 하얀 증기와 힘찬 소리에 한없이 먼 곳으로 내달리다가도
연탄 한 장 새끼줄에 꿰매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남리에 머물 때
미지근한 온기가 저녁 밥상에 모락모락 피기도 하고 고운 색종이를 접어 일기장에 감추기도 한 백열등 지붕 그러니까 까만 연탄공장과 기찻길 옆 작은 집들 이야기는 그녀의 십 대 끝에서야 비둘기호에 실려 먼 곳으로 이주하였다.